인류는 그 성(姓)에 따라 세 종류의 인종으로 나뉜다. 알파, 베타, 그리고
오메가.
알파들은
그 압도적인 지배력과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제 발 밑에 두었다. 그들의 통치는 무자비했고, 그 누구도 그들의 몰락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알파의
몰락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들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사회가 성장하고 산업이 발달할 수록 그들은
더 강한 지배력, 더 막대한 권력을 원했다. 알파 사이의
지배권은 순전히 페로몬의 강약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그들의 재력마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돈 많고 재능 없는 알파들은 제 지배력을 현대 병기에 의존했다. 그것이
그들의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세타력 1964년의 첫 번째 폭탄 테러 이후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무장 레지스탕스의 저항은 1972년 반데르만 시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상당수의 베타와 일부
오메가로 이루어진 무장 레지스탕스 척화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참혹한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 그들은
반데르만 영주 아르퀴레를 효시하고 알파의 거주 구역이던 플래티넘 포스칼을 지반 째 가라앉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제 생활을 하던 알파들은 아주 작은 어린 아이까지 건물 째로 매장되었고, 세상은 순식간에
전란에 휩싸였다. 그들의 전쟁은 중앙군의 개입으로 1년만에
진압되었으나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알파들은
아주 오랫동안 억제제의 개발을 제어하고 그 제조 라인을 독점함으로써 오메가들을 관리해왔다. 히트사이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오메가는 영원토록 알파의 노예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척화의 간부 파르챠타는
제 살 길 찾는데 급급한 베타를 꼬득이는 것보다, 알파의 침대 밑에 잠들어있는 오메가의 손에 칼을 쥐어주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들은 영주 아르퀴레의 개인 연구 기록을 바탕으로 억제제 ‘카모밀레’를 개발, 공표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것은 반데르만 전역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부작용이 없고, 보관성이 뛰어나며, 대량 생산 가능한 억제제의 등장은 오메가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반데르만
항쟁 이후 알파들은 편집증적으로 오메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실제 척화의 구성원 대부분이 베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베타를 억압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대신 오메가의 인권을 박탈했다. 이전보다 더 악랄해진 착취에 레지스탕스도 나날이 힘을 잃어갔다.
세타력 1980년, 계급 피라미드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3년 겨울 이래로 무장 봉기는 그 힘을 잃었으나 한 알파 아이의 신상을 지워버릴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오메가가 채웠다. 아이반 세네그로. 그의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업적만은 위대했다. 그는 자그마치 1년 동안이나 알파 행세를 하며 온갖 정보를 빼돌렸다. 그가 빼낸
정보의 효용성은 둘째치고 오메가가 알파 행세를 하고도 1년이나 들키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알파의 우월성이 근본부터 부정당한 것이다. 더이상
세상은 알파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카모밀레의
뒤를 이은 슈팅스타, 트러블메이커, 스칼렛 등의 억제제의
발명은 알파와 오메가의 경계를 허물었다. 여전히 알파는 강력했으나 육체의 강함은 현대 병기 앞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또다시 테러리즘이 활개를 쳤다. 전국 23개 베타 노동 조합의 동시 파업과, 레지스탕스의 거의 인종 학살에
가까운 테러 행위로 알파의 권위는 너덜너덜해졌다. 몇몇 강대한 알파만이 간신히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전성기 때 전체 인구의 5%에 달하던 알파의 수는 전쟁
말미엔 전체 인구의 0.4%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의심할
것도 없는, 알파의 몰락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현재, 세타력 2105년. 드비셰는 한탄했다.
“이건
인종 차별이야, 세티. 왜 베타만 뽑는다는 거야?!”
“진정해. 아직 한 군데 더 남았잖아.”
“젠장. 망할 놈들.”
세상은
뒤집혔다. 적응하지 못한 이는 과거의 영광을 여태 잊지 못하는 알파뿐이었다. 드비셰는 차라리 알파의 수명이 베타나 오메가만 했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죽거렸다.
차창
너머 언뜻 스쳐지나가는 시청 광장에는 형형 색색의 플랜카드가 가득했다. ‘알파용 억제제 무상 지원 촉구’, ‘탈(脫)각인 치료
의료보험 적용 기원’ 등등 문구도 가지가지다. 광장 한쪽에는
데모하는 알파들이 저들끼리 모여 웅성거렸다. 보고있기만 해도 짜증나는 광경이었다.
시민
사회가 도래한지 벌써 100년이 지났다. 드비셰가 보기에
세상은 반쯤 미쳐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00살이
넘은 나이든 알파 꼰대였는데 아직까지도 제 주제를 파악 못하고 옛 영광이나 곱씹으며 살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벌써 50년째 데모만 하고 있다. 역차별이네 뭐네
하면서 알파들이 핍박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 아비의 행태는 이제 25살 먹은 드비셰가 보기에 피해의식에
점철된 쓸데없는 망상이었다. 아니,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히트사이클에 목숨이 걸린 오메가랑,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문제 없는 알파가 같냐고! 대체 왜 알파용 억제제까지 정부가 무상 지원해줘야하는 건데? 그
세금은 또 다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하여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런
걸 보고 살다보니 사업주들이 각인이니 페로몬이니 하는 복잡한 것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만 할 수 있는 베타를 선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고 해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어쩔
수 없잖아. 솔직히 우리가 들어가기엔 좀 허들이 높기는 했어.”
“아, 진짜, 대학이라도 나와야하나…….”
“우리
아직 학비 지원 대상이던가? 잠깐만 기다려 봐. 그게 몇
살까지더라…….”
그렇다. 드비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회에 뛰어든지 일주일만에 쓰디쓴 현실의 장벽에 부딪힌 이래로, 자그마치 6년째 실업자 신세였고,
빌어먹을 청년 실업 급여로 못난 아비를 먹여살리는 소년 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