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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독자?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의미불명의 날조썰
(어디까지나 샄님 기준) 중독이라고 우겨본다. 근데 김독자는 안 나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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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글은 본편 296화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 스포주의 ※


  그녀를 만난 것은, 1863번을 이어진 그의 삶에 마지막 구원이었다.


***

어떤 구원에 대하여.

***


  또 시작인가.

  유중혁은 가만히 시간을 헤아렸다. 곧 7시. 지긋지긋한 연극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실패한 것이다. 이것으로 벌써 1863번째. 이 빌어먹을 짓을 벌써 1862번이나 했지만 시나리오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기는 커녕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지도 모르겠군. 유중혁은 비소했다.

  1862회차는 정말로 소득이랄 게 없었다. 달리 얻은 것도 없는, 사실상의 개죽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1861번째도, 1860번째도, 그 전의 전의 전도 마찬가지였으니. 회귀를 거듭할 수록 시나리오의 끝은 멀어져만 간다. 마지막으로 90번째 시나리오 이상 진행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했다. 그는 분명 강해졌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또 이 빌어먹을 짓을 하다가,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고 뒈질 것이다. 그리고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지.

  [아. 아. 잘 들리시나요? 이것 참, 한글 패치가 안 돼서 고생했네. 여러분. 제 말 잘 들리시죠?]

  유중혁은 차분히 열차칸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무기질적인 시선이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일별했다. 별달리 유심히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이정도로 많이 보면 싫어도 얼굴을 외우게 된다.

  [여러분, 지금까지 꽤나 살기 좋았을 겁니다. 그렇죠?]

  죽일까.

  유중혁의 손에서 가벼운 스파크가 튀었다. 그에게 내려진 성흔이 지나간 시간의 설화(說話)를 새로운 세상에 재현한다. 이대로 저 도깨비를 죽여버려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곧 다른 놈이 오겠지만, 소소한 재미거리는 되겠지. 어차피 고작해야 첫 번째 시나리오. 소소한 이변이 생긴다 한들 결말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그는 지긋지긋하리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좋은 시절은 이제 다 끝났어요. 언제까지 공짜를 누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행복을 누리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게 상식이지. 안 그래요?]

  혹은, 그냥 사람들을 죽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제 그는 굳이 같잖은 학살쇼를 하며 성좌들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아도 될만큼 강했지만, 어차피 이들은 지금 그의 손에 죽나 시나리오에 농락당하다 죽나 곧 죽을 사람들이었다. 비참하게 살다 죽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살해당하는 게 더러운 꼴을 덜 보기야 하겠지.

  유중혁은 자비를 잊었다. 기실 그런 게 처음부터 존재했었는지도 이제와서는 의문이지만……. 해묵은 기억은 좌절의 기억과 함께 묻혔고, 본래도 흐릿했을 감정들은 억겁의 세월 속에 스러졌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닫고 말았다. 저 지긋지긋한 하늘의 별들이 그토록 자극에 집착하는 이유를,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소름끼치는 스스로의 역겨움을.

  여기 이 사람들은 아마 모두 최선을 대해 살아온 사람들이겠지. 각자 지키고 싶은 것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런 것 하나하나에 그 어떤 감상도 느끼지 못하게 된 지가 제법 되었다. 더는 ‘동료’를 만들지 않게 된 것도 그 즈음 부터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훨씬 이전부터 이미 저 같은 괴물에게 진심으로 협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터였다. 그는 되도록 검증된 방법으로 시나리오를 깨 나갈 계획이었으나, 과거의 성공을 재현하기엔 그 자신이 너무나 달라지고 만 것이다.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다니, 지나치게 순진한 기대였다. 애초에 그 ‘과거의 성공’조차 진짜 성공도 아니었으니 부질 없는 희망이었던 셈이다.

  ‘살 사람은 살겠지.’

  유중혁의 시선이 옆칸으로 이어진 문을 잠시 스쳐지나갔다. 이제는 그와 인연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아니,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인연이니 ‘없어진’ 것도 아닌가.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을 것이다.

  곧이어 거창한 비명소리와 함께 불광행 3434열차 3707칸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

  유중혁이 그녀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깨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회귀 횟수가 1000번이 넘어갔을 무렵부터 그는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초반부의 시나리오는 알아서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던전을 부수고 히든 피스를 쓸어 담는 나날. 그의 적은 망할 도깨비 새끼들과 하늘의 먼지 덩어리들이지 미련하게 살아남자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벌써 수 백번은 반복했을 지긋지긋한 보물찾기에서 처음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 기이한 운명에 이끌리듯 유중혁은 광화문을 찾았고, 그녀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유중혁, 나는 네 미래를 알고 있어.’

  그것은 본래 거기에 ‘없어야 할’ 존재였다. 그의 손에 들어왔어야 할 히든 피스가 그녀의 손으로 넘어갔음을 알았을 때, 그는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살려둔 것은 순전히 이현성이 그 여자를 비호했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아직 죽으면 곤란했다. 그렇게 그는 그녀를 내버려뒀다.

  어디선가 알아서 죽겠지. 유중혁은 생각했다.

  어차피 초반부 시나리오에서 사소한 변화가 생긴다고 해봤자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제껏 만난 적 없는 사람이라면, 결국 그 뿐인 존재. 어차피 그 여자는 후반부 시나리오의 근처에도 가지 못 할 것이다.

  그럴 터였다.

  ‘어떻게’

  때문에 암흑성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유중혁은 참으로 오랜만에 당혹감을 느꼈다.

  ‘저 여자는 뭐지?’

  그녀는 유중혁이 가지지 못한 것, 진작에 포기한 것, 스스로 버린 것들을 당연하다는 듯 두르고 있었다. 성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가 지나온 모든 회차에서, 성좌들은 그를 원하고, 비웃고, 증오하고, 두려워하였으나 그토록 즐겁게 그의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다.

  천진함이라니.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가.

  유중혁은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했다. 드디어 미쳐가는가.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단 한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암흑성을 돌파했을때, 그는 이번에야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것’은 특별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같은 이야기를 수 백 수 천 번 반복하는 것 뿐인 자신과는 달리.


***


  유중혁은 타오르는 태양볕 아래 새하얗게 빛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벌써 오래 전에 잊어버렸을 터인 감정들이 등줄기를 타고올랐다. 경이. 슬픔. 분노. 고독. 열패감. 그리고, 

  안도.

  때로는 부질없는 짓임을 알아도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에게는 세계를 구하는 것이 그러했고, 죽음이 또한 그러했다. 희망이 없음을 알더라도 그는 갈망했다. 그리고 드디어-

  천 번이 넘는 회귀에서, 유중혁은 단 한 번도 저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되었다. 이런 ■■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유중혁은 만족했다.

  그의 눈 앞에, 새하얀 날개를 가진 마왕(魔王)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트친님한테 이거 중혁수영 아니냐고 그러셔서 뭔가 패배한 기분임ㅠㅠ
아니 제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약을 셀프로 들이붓지는 않아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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