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비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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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의 내용은 언젠가 트위터에 풀었던 아가에이 나베리우스 썰을 바탕으로 하는 토막글입니다만, 백업하기 전에 지워버려서 해당 썰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대충 알아서(...) 상상해주시기 바랍니다.

※ 다시 보니 아가에이가 아니라 바사에이인 듯 하지만 일단 아가에이라고 우겨봅니다. 미안해 바사고...

※ 날조한 설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쪽 → http://pw-secret.tistory.com/29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어머, 딱 적당한 때에 왔네요. 안 그래도 곧 부를 참이었는데."

  여느 때와 같이 달큰한 목소리로 그를 반기며 여자는 선반 위의 장미청을 꺼냈다. 물론, 여느 때와 같이 직접 만든 장미청이었다. 따라서 그도 여느 때와 같이 모르는 척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건, 대체……."

  바사고가 탄식했다. 그는 저 여자, 그의 계약자이자, 황금 새벽의 마법사들의 종주이며, 약속의 주인 된 소녀의 저토록 무방비한 모습을 본 역사가 없었다. 바사고는 새삼 무례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여자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었다. 이제와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얼굴을 발갛게 물들일 만큼 순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모른 척 하기에는 여자의 몸에 남은 흔적이 지나치게 적나라했다. 이건, 대체. 아니 정말로, 이건, 대체.

  “아하”

  여자는 그 노골적인 시선에 알 만 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의 무례를 지적하는 대신 컵 안에 물을 따랐다. 그녀의 표정이 평화로울수록 그의 태도가 절로 삐딱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곤란한 일이 있었죠. 그래도 지금 당신이 멀쩡하다는 건 다소 긍정적인 징조로군요."

  대수롭지 않은 어투다. 뜨거운 물을 휘휘 젓는 손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물론 그 주체가 하얀 나신 위로 명백하게 제 것이 아닐 셔츠 한 장만을 대충 걸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가 익히 아는 그의 계약자로 말할 것 같으면 제 집 안방-물론 여기가 그 ‘제 집 안방’이기는 하다-에서조차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법 도구, 예컨대 카드나 장갑 등을 빼놓는 법이 없는 수상한 여자였다. 심지어 그녀는 지금, 제 목이며 허벅지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난잡한 흔적들을 딱히 감출 생각조차 없는 듯 했다. 바사고는 말을 잃었다.

  "아마도, 나베리우스가 예의 그 종을 지나며 뭔가 일을 친 모양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처리해야겠다 생각하긴 했는데 한 발 늦었죠. 지옥 2등위의 대악마를 현혹했을 정도이니 지금쯤 이 근처는 아주 난장판이 되어있겠군요."

  “……현혹?”

  “그래요. 나베리우스는 잊혀진 무언가나 감추고 있던 어떤 것을 드러내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악마죠. 어쩌면 욕망이나 원망(願望)1)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일도 가능할 거예요.”

  욕망과 원망(願望). 바사고는 방 안에 미세하게 남은 악마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지해냈다. 감춰진 열망을 겉으로 끌어낸다는 건 그리 대단한 해악은 아니었으나 어딘지 꺼림칙해 그는 제 주변에 몇 겹으로 결계를 치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럼 아가레스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나베리우스를 잡으러 갔죠. 그게 지금 당신이 제 정신인 이유이기도 하고.”

  여자의 말은 그럴 듯 했다. 아마 아가레스가 나베리우스를 잡으러 갔다는 말도 사실일 것이다. 공기 중에 퍼져있는 기운에는 나베리우스의 것 외에도 아가레스가 가진 정화의 기운이 섞여있었다. 이미 있는 기운을 강제로 찍어 누른 흔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럴 듯’ 하다는 거지 저것이 진실일 리가 없다.

  “그걸, 지금 날 보고 믿으란 겁니까? 아무리 성물의 힘을 빌렸다지만, 고작 악마의 장난질에 만세계의 지혜를 허락받은 당신이 속아 넘어갔다고?”

  “글쎄요. 반지를 끼는 걸 깜빡했을지도 모르죠. 안타깝게도.”

  과연.

  알 만 했다.

  “하-”

  바사고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어떤 것을 가까스로 씹어 삼켰다. 내뱉은 숨이 뜨거웠다. 여자는 성화 속의 천사같이 웃었다. 천진하고 무구한 낯이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 위에, 제 입술을 검지로 누른 그 손가락에 보란 듯이 자리한 반지와, 그리고.

  “바사고.”

  그를 부르는 그 다정한 목소리에.

  “이 주변을, 좀 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는 도망쳤다.


1) 1. 원하고 바람. 또는 그런 것. 2. <심리> 정신 분석학에서, 마음속의 긴장을 해소하려 함. 또는 그런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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