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비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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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약주의, 설정날조주의
  에일린 나이는 17살 내외. 반지는 우연한 기회로 얻었고, 솔로몬의 도움은 없으며, 레메게톤 원본 역시 없음. 아가레스를 소환한 지는 이틀 정도 되었음.
  는 사실 얘 사춘기 지난 다음 아가레스를 소환했다면 썸은 커녕 인생에 별다른 영향도 못 줄 것 같아서 본격 설정 날조!

※ 날조한 설정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이쪽 → http://pw-secret.tistory.com/29

  숨이 막힐 듯 강하게 죄어오는 압박감에 에일린은 번뜩 눈을 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암흑뿐이다. 이런, 이 지경이 되도록 눈치 채지 못하다니.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온 몸을 바싹 긴장시켰다. 그녀는 적이 많았다.

  "더 자라."

  순간 그녀가 튕기듯 몸을 떨었다. 그걸 느꼈는지 몸을 죄는 압박이 더 강해진다. 제법 강하게 떨쳐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꽉 그러안겨있는 팔뚝 탓에 애초에 움직인 것은 겨우 말아 쥔 손가락뿐이니 밀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정수리 언저리에 딱딱한 무언가가 꾹 눌러오는 것을 느끼며 에일린은 까득 이를 물었다.

  "비키세요, 아가레스."

  "더 자라고 했다."

  맙소사. 이 망할 악마가.

  에일린은 턱 밑까지 들이찬 분노를 애써 내리눌렀다. 화를 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꿀떡꿀떡 올라오는 선명한 열기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적습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훨씬 질이 나쁘다. 드러난 살갗에 와 닿는 미온한 온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뭐가."

  "본래 그러한 성정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자고 있는 사람까지……."

  그러자 세상이 훅 뒤집혔다. 들이 닥칠 빛에 대비해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으나 주위는 아직 제법 어두웠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얼마 전 계약한 새 악마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뭇 불쾌하다는 듯 미려한 낯을 사정없이 구긴 그는 허 하고 숨을 뱉어내더니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착각도 정도껏 해라. 내 원치 않는 이를 강제로 안는 취미 없다."

  "그걸 믿기엔 당신 전적이 좀 화려해야죠."

  "시끄러워. 잔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옆자리에 풀썩 엎어진다. 그가 곧이어 할 말은 다 했다는 양 손을 내어 두 눈을 덮어버린 탓에, 또다시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눈에 와 닿는 온기가 달가울 리 없었다. 에일린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망할, 악마가.

  "이건 또 무슨……."

  "계집. 네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 안하지만, 같잖은 소리를 하려거든 그냥 잠이나 자라. 네 저열한 상상에 어울려줄 마음 없으니까. 애초에 청한 것을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야. 화려한 전적은 무슨."

  제멋대로 말을 마치고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끌어안는다. 눈을 가리던 손이 도로 어깨를 휘감자 처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꼴이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온기가 떨어져나간 자리에 새카만 어둠이 아니라 잿빛 천장이 흐릿하게 비친다는 정도. 에일린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아가레스를 몇 번 밀쳐냈다가, 곧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이리 될 줄 모르고 소환한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겪고 있으려니 끔찍하게 피곤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아까보다야 비교적 자유로워진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손끝에 와 닿는 금속의 감촉이 제 살갗 마냥 미적지근하다는 것에 의외로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 반지야말로 그녀의 우위를 보장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였으므로, 에일린은 이번에야말로 이 새하얀 찰거머리를 떼어내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녀보다 그가 조금 더 빨랐다.

  "허, 까다롭기는."

  아가레스가 정말 귀찮아 죽겠다는 티를 내며 이불을 그녀의 목 언저리까지 끌어올리고는, 두어 번 그 위를 툭툭 치더니 팔을 뻗어 이불 째로 그녀를 휘감았다. 됐냐. 이제 자라. 아가레스가 답지 않게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반 쯤 잠에 든 노곤한 목소리였다.

  "……아가레스."

  그는 그녀의 부름을 무시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작은 머리통 위에 턱을 얹고 끌어당기자, 품에 들어차는 감촉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의 새 계약자는 유독 제 몸에 닿는 것에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시종일관 더 없이 합리적인 마술사처럼 굴다가도, 그가 제 살에 닿으려만 하면 물 앞의 고양이마냥 날을 세웠다. 그녀의 삶을 모조리 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본질이 본래 그러한 탓에 많은 것을 알고야 마는 아가레스로서는 그 날 선 경계를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나빴다.

  물론 그는 그녀와 관련된 일이면 거의 항상 기분이 별로기는 했다. 계약부터가 반쯤 강제로 맺은 것이나 다름없긴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 썩 달갑지 않은 탓이다. 아가레스에게 있어 에일린 그린힐이라는 존재는 비 오는 날 길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와 같다. 극렬히 혐오하지도, 증오지도 않으나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어딘지 꺼림칙한 구석이 있는. 때문에 그녀가 저리 칼같이 경계하지 않더라도 애초에 어떻게 해볼 생각이 없었다. 비록 그녀가 제법 제 취향에 맞는 겉가죽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기어이 신경 쓰고야 마는 것은-

  "아가레스"

  "아, 또 왜."

  "팔, 답답해요."

  아가레스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치켜뜨고 제 품 안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팔에서 조금 힘을 풀자 가만히 천장을 주시하던 에일린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내 눈꺼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 흐릿한 눈빛이 세상 모든 것을 연민하여 기어이 제 운명에 휘둘리고야 만 어느 어리석은 남자와 닮았다고 아가레스는 생각했다.


이 다음 역소환 당했다고 합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